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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이 분당에서 102번에 몸을 실은 채 건대역으로 향하고 있던 며칠 전 저녁, 열심히 외모를 정리 정돈(?)하고 있는 여자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곱게 볼 화장 덧칠을 하고, 거울을 보면서 제대로 되었나 확인을 하기도 하더니, 빗을 꺼내어 까맣고 곧으며 긴 머리칼을 정갈하게 빗고 나서 하얀 털 모자를 조심스레 쓰고선 모든 게 제 마음에 들게 자리잡았는지 확인하느라 다시금 거울을 보던 그녀. 마치 그녀 마음 속에 설레임으로 자리잡은 그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듯, 그녀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뒷모습만으로도 그 설레임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녀의 얼굴이 궁금했던 내 마음이 갑자기 사그라들기 시작한 것은 상상속의 그녀 얼굴이, 내 얼굴과, 내 마음 속을 스쳐갔던 그 어떤 누군가의 얼굴로 오버랩되면서 부터이다. 내가 그 누군가를 만나러 가며 그랬듯, 그 누군가도 나를 만나러 오는 길에 그랬겠지.
오늘 만나서 무슨 일을 할까?
어떤 이야기를 할까?
내 옷차림에 실망하지는 않을까?...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 새 목적지에 도착해서 설레임속에 그 혹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을 것이다. 5분, 10분 시간이 지나다보면 어느 쪽에서 그 사람이 나타날까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초조해하겠지? 그리고 그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떻게 말을 건낼까, 늦었다고 짜증을 내볼까, 아니면 나도 방금 왔다며 상대방에게 별 관심 없는 척을 해볼까... 이런 모든 잡념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지어지는 웃음과 함께 하는 말...
왔어?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랑이 주는 고통에 익숙해져가기 시작하고, 어느 새 무언가에 대해 체념하는 데 익숙해져버리지만, 그 설레임이 주는 짜릿함만큼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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