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있다.
그러니까 요즘의 나는 건설 현장에서 건축 기사로서의 임무를 대충 그럭저럭 수행하고 있는 중이란 말이다. 아직은 현장에서 정신이 없다.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바쁘기 보다는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는 말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 무엇을 봐야 하는지도,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마치 세월이라는 커다란 물줄기를 아무런 힘 없이 떠내려가는 나뭇가지마냥... 그렇게 3주라는 시간을 나는 소비해 버렸다.
물론 달라진 점은 있다. 아무것도 몰랐던 철골공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도 알게 되었고, 현장의 그 수많은 공종들이 어떻게 맞물려서 돌아가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더 크게 깨달은 것은, 역시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닐까? 나름 4년이라는 시간동안 그 잘난 대학생이라는 허울 속에서 스스로를 안심시켜왔던 내 모습을, 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기에.
그래도 여전히 나는 건축 기사다. 이 말은 곧, 언제까지나 '난 아무 것도 모르는 존재일 뿐...' 이라며, 마치 패배를 즐기는 듯한 어투를 어느 순간부터 익숙하게 느끼는, 지난 4년간의 학생과는 다른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건축 기사로서의 내 한 마디의 힘은 엄청나다. 고된 하루 속에서도 숭고한 노동의 가치를 몸소 보여주고 계신 현장의 모든 작업자들과 그들의 가정의 행복은... 내가 지켜 줄 수도, 파괴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하고, 그렇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