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는 차량 가장 앞자리에 몸을 맡기고 앉아 멍하니 어둡고 텅빈 도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도로 옆에 있는 논에서 나온 개구리가, 서둘러 고속도로를 전속력으로 점프하며 건너려하다 안타깝게도 내가 탄 차량의 바퀴에 깔려 즉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분명 그 개구리도 5분 전, 아니 5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에게 닥쳐 올 죽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어두운 밤 거리에 홀로 켜진 차량 헤드라이트를 향해 본능을 이기지 못해 돌진하는 나방들도 보면서, 문득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의 반대말은 '삶'. 삶이라는 단어가 '살다'라는 단어에서 나온 명사적 표현임을 생각한다면, 분명 '삶'은 연속적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며 느끼는 아침의 향기에 행복해 하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따스함도,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참지 못하는 것도... 살아왔고, 지금 살아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가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삶'과 반대로 '죽음'은 순간적이다.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죽음'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다. 마치 개구리가 5분 후에 다가 올 자신의 죽음을 예지하지 못한 채 '삶'을 지속했듯, '죽음'은 어느 '순간' 우리에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뭘까...
처음에는 죽음을 맞이할 그 순간의 고통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날카로운 칼을 보면 섬칫해지는 것처럼, 누군가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 처럼...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꼭 그 고통때문에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죽음'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가, 한 가정의 일원이, 한 부모의 '자식'이, 한 사람의 '형제'가, 한 사람의 '배우자'가, 한 사람의 '친구'가... 그들의 기억으로부터 천천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과... 자신 또한 그 소중한 사람들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우리 머리 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분명, '죽음' 또한 '삶'처럼 연속적인 것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