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국회의원이라는 존재가, 아니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는 존재가 자신이 처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리 저리 말바꾸기를 자주 하는 족속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치자. 그래서 그런 말바꾸기가 '그들 나름의 직업 정신'이라며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치부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그게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 될 수 없음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투철한 '직업 정신' 자체를 비판했던 사람이 갑자기 매우 결정적인 순간에 그 '직업 정신'을 제대로 무장하고 나타났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초등학생들도 자기가 친구들에게 내뱉은 말을 바꿨다가는 친구들에게 욕을 먹거나, 심지어 따돌림을 당할 지도 모른다. 왕따를 극도로 싫어하는 초등학생들에게 '말바꾸기'는 절대 친구들에게 저질러서는 안 될 암묵적인 법칙으로 통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 초등학교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 우리나라 대선 경쟁구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의외로 '왕따 당해야 마땅한 그 친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반에서 두번째로 많은 현상이다. 제 3자가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하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야. 그 반에는 그렇게 인물이 없냐?
우리가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있을까?
만약이라는 전제는 무의미하다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과거를 두고 하는 만약을 두고 하는 말이고 미래에 일어날 법한 사실을 '만약'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걱정하고 대비하는 것은 분명 생산적인 일이다.
지금 그의 말바꾸기가 그의 말대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정권교체라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한번쯤 묵과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에" 그가 내건 공약이 2~3년 후에, '정치적 현실을 고려하여' 뒤바뀌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정치인에게 '말'은 자신들의 무기이자 자산이듯, 대통령에게는 '공약'이 생명일텐데 그 '생명'과도 같은 존재를 그의 표현대로 '헌신짝처럼 버리면', 그를 믿고 지지했던 사람들은 마치 '2002년의 노사모 회원들이 노무현을 바라보는 꼴'과 다를 바가 무엇이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국회의원은 말바꾸기를 해도 되는 족속들이라고 치자. 그러나 대통령만큼은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 절대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범죄를 저지른,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