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해외인 제주도로 떠 본 이후 처음으로 떠보는 날... 사실 그 전날 온라인 친구들이랑 간만에 모임이 있어서 나갔다가, 찜질방에서 잠을 잔 후 아침에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게다가 여행준비라고는 하나도 해놓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비행시간이 5시 30분이었던 상황을 감안한다면 집에 다시 돌아온 아침 11시는, 생각외로 여유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덕분에 머리 정리도 못하고 찜질방에서 목욕한 것을 제외하면 정신없는 상태 그대로 미리 준비해두었던 여행용품 체크리스트대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셔틀을 타야하는 시각이 대충 2시 반이었던 거 같다. 어렵게 어렵게 리무진에 올랐을때만 해도 사실 여행을 가는구나하는 감흥이 크지 않았다. 그냥 바퀴달린 내 샘소나이트 가방이 무거웠던데다 엄청 더운 날씨에, 누나가 선물해줬던 싸고 이쁜 선글래스는 자꾸 콧잔등에서 미끄러지고... 모두가 귀찮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정신없음을 뒤로한 채 도착한 인천공항. 옛날 그 애랑 지나가면서 봤었던 곳. 그렇게 두번째 경험하게 된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갑자기 '내가 여행을 간다' 는 크나큰 떨림과 설레임이 가슴을 메우기 시작했다. 출국까지 어떠한 process가 있는지 책을 찾아보며, 모르는 부분은 아리따운 공항직원에게 물어보며 그 설레임을 마음껏 즐겼다.
그렇게 비행기에 몸을 실은 나. 운좋게도 창에 앉아서 마음껏 사진을 찍어댔다. 잘 나온 사진은 별로 없지만 말이다. 하늘의 푸르름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타이완과 방콕을 경유했다. 타이완은 1시간 시차, 방콕과는 2시간 시차가 났다. 타이완의 공항은 참 깔끔했는데, 방콕 공항은 나와 같이 독일로 가려는 독일인들로 게이트 대합실이 꽉 차있어서 짜증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지겨웠던 건 11시간이 넘는 장기 비행... 그 때는 내가 가는 방향이 자전방향과 반대였기에 그나마 덜 지겨웠다는 것도 몰랐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공항과 역사가 절묘하게 이어져있는데 건물의 규모는 물론 그 내부의 동선연결과 미래지향적인 아름다움, 적절한 길 안내판, 깔끔함, 사람들의 친절함... 이 모든 것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체코와 독일의 국경지역인 드레스덴까지 가는데 유레일 패스없이 83유로(거의 10만원... oTL)를 지불해야만 했다는 사실 외에는, '역시 선진국은 다르구나' 라는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독일의 자랑인 ICE(이체). 무진동(기차에서 편지를 쓸 수 있다), 무소음, 안락함, 청결함, 고급스러움... 이 모든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최고의 열차. 사실 유럽에서 처음 타 본 열차였기에, 그냥 좋구나 하고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모든 유럽 열차가 다 이럴 것이라 기분 좋은 오해를 하기도 했었다. 드레스덴까지 걸린 시간은 5시간.
다만 드레스덴에서 프라하로 가는 기차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했기에, 나는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드레스덴에 머물러야만 했다. 독일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내게(어줍잖은 영어실력으로 버티기에) 그 시간은 너무나 길었다. 드레스덴 역사 화장실에 갔다가, 허기를 때우기 위해 잠시 들렀던 버거킹에 여권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겁지겁 뛰었던 기억... 덕분에 1유로(한화로 약 1,230원)나 하는 화장실 출입료를 두 번이나 내야만 했던 기억... 마치 드레스덴이라는 곳은 프랑크푸르트와는 다른 세계만 같았다. 지금은 통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서독과 동독... 그 괴리감 같은 것... 말이다.
이렇게 저렇게 도착한 체코 프라하... 동유럽이라 부를 수 있을 법 하다. 러시아어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체코어.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 -스카, -카 등으로 자주 끝나는 체코말. 지하철 방송을 듣다보면 마치 한국말로 무슨 욕하는 거 같다.
미리 예약한 민박집의 위치는 시내 중심가에서 꽤나 떨어져 있는 편이었다. 너무나 긴 여정이었기에 몸이 피곤했다. 하지만 그 힘든 여정만큼 민박집에서 반겨주는 민박집 사장님과 아주머니, 그리고 여행객들은 그만큼 큰 의지가 되었다.
밤이 되어 사람들과 같이 프라하 성의 야경을 찍으러 나갔다. 클럽에서 프랑스 아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춤도 추고 술도 마셨다. 그렇게 유럽여행의 첫 날이 저물어갔다.